한국인의밥상 양양 고흥 삼치 도치 홍가리비 식당 위치

🌊 겨울 바다가 차려낸 푸짐한 밥상
겨울 바다는 차갑지만, 그 바다가 품은 식탁은 언제나 따뜻하다. 동해의 도치, 남해의 삼치, 그리고 고흥의 홍가리비까지. 겨울이 깊어갈수록 바다는 한 해 동안 길러낸 보물 같은 생선을 선물하고, 그 생선을 손질하는 어부들과 부녀자들의 손길에는 오랜 세월 터득한 지혜가 깃든다. 그들에게 바다는 단순한 생업의 터전이 아니다. 도치의 쫄깃한 살점, 삼치의 고소한 향, 홍가리비의 담백한 단맛에는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 있다.
🐟 강원도 낙산항, ‘못생겨도 맛은 최고’ 도치 강원도 양양 낙산항에서 30년 넘게 배를 모는 김대곤(73) 선장. 며칠 동안 풍랑주의보로 바다에 나가지 못했지만, 경고가 풀리자마자 서둘러 조업 준비에 나선다. 겨울이 제철인 도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바다에 던져둔 그물도 오래된 탓에 걷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도치는 평소 깊은 바다에 살다가 겨울 산란기가 되면 연안으로 나온다. 알을 보호하기 위해 바위에 몸을 붙이고 버티는 생태 덕에 ‘심퉁이’라는 별명도 있지만, 그 맛만큼은 동해안에서 명태를 대신할 겨울 별미로 자리 잡았다. 김 선장이 거친 파도를 넘어 도치를 잡아 오면, 그의 아내 송연옥(65) 씨와 마을 어르신들이 분주해진다.
도치 수놈은 뜨거운 물로 점액질을 벗겨낸 뒤 삶아 숙회를 만든다. 식감이 쫀득하고 감칠맛이 풍부해 겨울철 별미로 사랑받는다. 도치 알은 소금물에 씻어 굳힌 후 귀한 제사 음식으로 올려진다. 옛날에는 도치를 머리에 이고 마을을 돌며 팔던 부녀자들도 있었다. 보리쌀 한 되와 도치 몇 마리를 바꿨던 시절의 기억이, 지금도 항구 사람들의 밥상 위에서 살아 숨 쉰다.

🎣 전남 나로도, 삼치가 차려낸 겨울 한 상 전라남도 고흥반도에서 6km 떨어진 작은 섬, 나로도. 이곳은 한때 삼치잡이로 유명해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량 조업 방식이 등장하면서 점차 쇠퇴해갔다. 그래도 나로도 사람들에게 삼치는 여전히 섬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나로도의 겨울 삼치는 크기부터 다르다. 2kg 이상이 되어야 삼치로 인정받으며, 작은 삼치는 삼치 대접을 받지 못한다. 겨울에는 삼치가 깊은 바다로 들어가기 때문에 ‘땅바리 낚시’라는 전통 방식으로 잡는다. 낚싯줄을 바닥까지 내렸다가 살짝 끌어 올려 삼치를 유인하는 방식이다. 나로도의 마지막 ‘땅바리’ 낚시꾼 김원태(59) 선장은 오늘도 배를 띄우지 못하고 마을 회관에서 삼치 밥상을 차린다.
삼치는 성질이 급해 물 위로 올라오면 바로 죽는다. 그래서 얼음에 재운 후 선어회로 먹어야 한다. 살이 무른 삼치는 두툼하게 썰어야 제맛인데, 나로도 사람들은 이런 선어회를 먹어야 삼치의 진짜 맛을 안다고 말한다.
회로 한 점 맛본 뒤에는 본격적으로 익힌 요리가 시작된다. 산란기를 앞둔 삼치는 지방이 많아 구웠을 때 고소한 향이 배어난다. 숯불에 삼치를 올리면 노릇하게 익어가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향이 진동한다. 삼치 뼈는 국물을 내어 어탕 수제비로 끓이는데, 한때 흔해서 버리던 뼈를 이제는 귀한 재료로 사용하는 게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어부들은 삼치 덕분에 살아왔으니, 그저 고맙기만 할 뿐이다.

🦪 고흥 강동마을, ‘바다가 키운 선물’ 홍가리비 고흥 강동마을의 겨울은 홍가리비 수확으로 분주하다. 10년째 홍가리비 양식을 하고 있는 손성주(60) 씨와 강난희(57) 씨 부부는 채롱(홍가리비를 키우는 망)에서 수확한 가리비를 크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손톱만 한 종패를 바다에 넣고 반년을 기다려야 하는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홍가리비가 클 때마다 채롱을 바꿔줘야 하고, 해조류와 다른 해산물과의 균형도 맞춰야 한다.
수확이 끝나면 홍가리비를 요리할 시간이다. 베트남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익혀 먹는 것을 선호했지만, 이제는 홍가리비회를 거리낌 없이 먹는다. 직접 키운 해산물이니 그 맛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마을 어르신들은 홍가리비로 육수를 낸 후 미역을 넣어 미역국을 끓인다. 강동마을 앞바다는 미역, 김, 톳이 풍부한 청정 지역이라 어른들은 갯바위에서 직접 해초를 뜯어 톳밥을 짓는다. 겨울 바다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삶이고 터전이다.
🍽️ 바다가 준 선물, 그리고 사람들 낙산항의 도치, 나로도의 삼치, 고흥의 홍가리비. 이 겨울 바다가 차려낸 식탁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다. 거친 파도를 견뎌온 어부들의 땀과 손끝에서 탄생한 세월의 맛이자, 그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추운 겨울, 바람은 거세지만 부엌에서는 도치를 삶고 삼치를 굽고 가리비를 찌는 냄새가 퍼진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둘러앉아 도치 숙회를 찍어 먹고, 삼치회를 나누고, 홍가리비 미역국으로 속을 데운다. 바다는 언제나 험하고 차가웠지만, 그 바다를 마주한 사람들의 밥상만큼은 언제나 따뜻하기만 하다.
한국인의밥상 양양 고흥 삼치 도치 홍가리비 식당 위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