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한바퀴 서울 중구 이북식찜닭 약수동 쟁반막국수
서울 중구 약수동, 오랜 세월 사람들의 숨결이 켜켜이 쌓인 먹자골목을 걷다 보면 문득 생소한 간판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이북식 찜닭’. 이름만 봐선 익숙한 음식처럼 들리지만, 막상 상에 오른 모습을 보면 다릅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간장 양념에 자작한 국물이 흐르고 당면과 감자가 뒤섞인 ‘안동 찜닭’과는 전혀 다른 풍경입니다. 이북식 찜닭은 말 그대로 북쪽에서 건너온, 실향민의 손끝에서 시작된 음식입니다.
맑고 연한 국물 위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닭 한 마리, 그 옆에 소복이 담긴 데친 부추 한 접시, 그리고 붉은 다대기 양념장. 비주얼만 보면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찜닭에는 40년 세월을 버텨온 단단한 서사와 깊은 손맛이 녹아 있습니다. 이곳의 주인장은 올해 일흔하나, 신명숙 씨입니다. 실향민 2세로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며 끓여오던 음식을 지켜왔고, 어느새 본인의 이름보다 이북식 찜닭집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처음엔 별 기대 없이 들어선 골목의 한 식당이었습니다. 그러나 가게 문을 여는 순간, 마치 오래된 앨범을 펼치듯 정겨운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반겨옵니다. 낡은 간판, 닳은 나무 테이블, 수십 년 세월을 함께해온 무쇠 솥들. 신명숙 씨는 이 작은 공간을 자신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가족의 역사라고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남편과 함께 일평생을 바쳐 이 식당을 지켜왔고, 그러는 동안 단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뇌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식당 한켠에 사진으로 남은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신 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 사람 없이 혼자 하긴 어렵겠더라고요. 그런데... 아들이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 아들이 주방의 불을 이어받았습니다. 칼을 잡고, 국물을 내고, 닭을 손질하고, 부추를 데치고… 이제는 아들의 손끝에서 다시 고향의 기억이 살아납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 음식은 화려한 맛이 아니에요. 먹다 보면 속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져요. 어머니 음식이 그렇듯, 고향 음식도 그렇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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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닭은 커다란 솥에 당귀, 감초, 대추 같은 약재를 넣고 닭을 푹 고아 만듭니다. 그래서 국물은 맑지만 진하고, 고기는 부드럽되 결이 살아 있습니다. 별다른 양념 없이 데친 부추는 향긋한 봄기운을 더해주고, 다대기장은 이북식 특유의 칼칼함을 간직합니다. 한 입 베어 물면 닭고기의 담백함, 부추의 아삭함, 양념의 화끈한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입안 가득 고향의 정취가 피어납니다.
오래된 단골들은 말합니다. “여기 찜닭은 위로가 되는 맛이에요.” 누군가는 어릴 적 부모 손잡고 이 골목을 찾았고, 누군가는 혼자 서울살이 하던 시절 힘들 때 이 찜닭을 먹으며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고도 합니다. 신 씨는 그런 이야기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저한테 말해요. 어머니 생각난다고. 그럴 때면 마음이 뭉클해요. 아, 잘 지켜왔구나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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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외식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새로운 식당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지만, 약수동의 이 골목 안에는 여전히 따뜻한 한 끼를 만들고 지켜내는 손들이 있습니다. 그 손이 다져온 시간을 지나온 닭 한 마리와 부추 한 접시. 이북에서 내려온 음식 하나가, 지금 서울의 중심에서 한 사람의 인생, 한 가족의 사랑,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추억을 이어주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도 신명숙 씨는 조용히 솥 뚜껑을 열고 국물의 향을 맡아봅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웃으며 말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이 맛은 안 변해야죠. 그래야 그 사람들이 다시 오니까요.”
그 골목, 추억이 내려앉는 저녁. 따스한 봄바람을 따라 걷다 보면, 약수동의 찜닭 한 그릇이 오랜 시간과 사람의 이야기를 고요히 들려줍니다.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데워주는 ‘시간의 밥상’입니다.
동네한바퀴 서울 중구 이북식찜닭 약수동 쟁반막국수:
약수동 춘천막국수
서울 중구 다산로10길 6 1층 골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