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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산에 숨은 맛의 보물창고, 장녀 위자 씨와 맏사위 희득 씨의 ‘산속 인생 정원’ 경북 영덕. 사람들은 대개 ‘대게’와 ‘푸른 동해’를 먼저 떠올리지만, 진짜 영덕의 속살은 바다보다도 깊고, 대게보다도 진득하다. 그 속살의 한 켜에 자리한 칠보산.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이 산은 ‘일곱 가지 보물을 품은 산’이라는 뜻을 가진다. 철, 동, 금, 산삼, 더덕, 약수, 그리고 이 부부의 손맛까지—그 어느 하나 빼놓기 아쉬운 진짜 보물들이 이 산자락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 보물 상자의 열쇠를 쥔 사람들, 바로 김위자 씨(62세)와 천희득 씨(61세) 부부다. 이름만 들으면 어디서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이름 같지만, 그들의 삶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그 어떤 레시피보다 더 깊은 맛을 낸다.

돌아온 산골 장녀, 그녀가 선택한 두 번째 인생 김위자 씨는 칠보산 자락 마을에서 태어난 여섯 남매의 장녀였다. 물길 한 번 편하게 잡기 힘든 산골에서, 아침마다 도시락을 쌌던 게 아니라, 하루치 용기를 싸서 학교까지 왕복 네 시간을 걸었다. 바짝 마른 얼굴로 교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오전 수업이 끝나 있기도 했고, 모내기철이면 결석은 숙명처럼 따라왔다. 그런 시간을 지나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위자 씨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구 방직공장으로 향했다. 누군가는 꿈을 좇을 때, 그녀는 의무를 택했다. 가족의 끼니와 동생들의 등록금이 그녀의 월급봉투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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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십 년이 흘러, 그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모님 병수발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시적인 귀향은 곧 영구 거주로 바뀌었고, 그녀는 결코 다시 오고 싶지 않던 산골을 제 발로 되짚어 나갔다. 이번엔, 자신만의 뿌리를 심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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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남편이 된 산골 맏사위의 변

신 남편 천희득 씨는 원래 무역업에 종사하던 도시 남자였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사람들 북적이는 공항이 익숙했던 이 남자는, 어느 날 아내를 따라 험준한 비탈길을 올라 산중으로 들어왔다. 처음엔 잠시 머무르려 했을 뿐이었지만, 산은 사람을 품는 데에 능했고, 위자 씨는 사람을 지키는 데에 지극했다. 결국 그는, 거친 언덕을 일구고, 손수 장을 담그는 ‘산골 맏사위’가 되었다.

 

 

 

 

그러나 희득 씨에게도 그만의 사연이 있다.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자식이 없던 큰댁에 보내져 어린 시절을 친가도 아닌 처가도 아닌, 그 어정쩡한 공간에서 보냈다. 친어머니를 “엄마”라 부르지 못했고, 친동생을 “동생”이라 불러선 안 되는, 정서적 유예 상태의 삶. 그런 그에게 가족의 따뜻함을 처음 선사한 건, 위자 씨의 동생들, 특히 초등학생이었던 막내처남 김경복 씨였다.

“매형이다, 매형!” 하고 뛰어들던 그 날. 희득 씨는 태어나 처음으로 ‘가족이 되는 감각’을 느꼈다고 했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경복 씨는 여전히 부부와 함께 살며 농사일, 김장, 장 담그는 일까지 도맡고 있다. 희득 씨는 경복 씨를 '처남'이 아닌 '복아'라고 부른다. 마치 형제가 된 듯한, 아니 어쩌면 늦게 얻은 아들 같은 존재다.

산이 준 선물, 그리고 함께 만든 식탁 세 사람은 매일 새벽, 알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눈 뜨면 바로 산으로 향한다. 제피, 고사리, 우산나물, 곰취, 참나물... 산은 어느 날은 향긋함으로, 또 어느 날은 쌉싸래한 기운으로 이들을 맞이한다. 위자 씨는 산나물의 향만 맡고도 “이건 그늘에서 자란 고사리야”라며 정확히 품종과 채취 시기를 짚어낸다. 산에서 따온 나물은 곧바로 삶아 말리고, 절이고, 장아찌로 변한다. 이것들이 차곡차곡 모여 ‘영덕표 장독대’가 되고, 곧 사람들의 밥상을 바꾸는 소중한 손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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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된장, 고추장은 물론이고, 취나물장아찌, 더덕고추장절임, 제피잎 간장절임 같은 이색 반찬까지 이들의 손을 거친다. 비탈진 땅에서 농사지은 콩으로 직접 쑨 메주로 장을 담그고, 해풍을 맞은 무와 갓으로 김치를 담근다. 메주 양만 해도 300kg, 간장과 된장은 항아리에 담긴 시간을 말해주는 시계와도 같다. 그중에서도 이들 부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건 산양삼이다. 장인어른이 남기고 간 유산처럼, 매해 정성껏 가꾸고 수확한다. 비록 경복 씨가 한때 이를 몰래 팔아 복권을 산 사고도 있었지만, 그조차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건, 그에게 ‘무엇이든 나누고 싶던’ 순수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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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사라진 처남, 그러나 다시 돌아올 식구 어느 봄비 내리는 날, 세 사람은 산양삼밭에 있었다. 잔잔하게 내리던 비가 갑자기 굵어지더니, 잠깐 쉬어가려던 부부가 눈을 붙인 사이, 경복 씨는 조용히 사라졌다. 우산도 없이 시내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깜짝 놀란 부부는 사방을 수소문했다. 혹시 또 복권을 사러 간 건 아닐까? 길을 잃은 건 아닐까? 그러나 희득 씨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복이는, 늘 돌아와. 자기가 돌아갈 집이 어딘지 아는 아이거든.”

해가 뉘엿할 무렵, 흠뻑 젖은 경복 씨가 빵과 음료수를 한가득 안고 집으로 들어섰다. “이거, 매형이 좋아하는 거예요.” 어린 시절, 형처럼 따르던 매형에게 선물이라며 내미는 모습에 위자 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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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유산이 된다 이들의 삶은 화려하지 않다. 시장에 내다 팔 김치며 장아찌에 붙는 가격표는 결코 비싸지 않다. 하지만 이 식탁의 가치는 그 어떤 레스토랑에서도 맛볼 수 없는 정성과 사연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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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하나에도 시간이 들고,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맛은 결국 사람이에요.” 위자 씨의 말처럼, 칠보산 아래 이 산골 집에는 시간이 익어간다. 봄에는 나물, 여름에는 장아찌, 가을에는 김장, 겨울에는 된장이 되는 시간들. 그 속에서 이들은 매일같이 새로운 계절을 담그고, 서로를 다시 끓여낸다.

칠보산엔 아직도 일곱 보물이 다 숨어 있는 것 같다. 다만, 누군가는 그것을 금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걸 장이라 부른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가족’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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