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밥상 어머니의 뚝배기 설렁탕 곰탕 순대국 천안 순댓국밥 순대 이천 도예가

경기도의 오래된 시장 골목에는 여전히 옛날 그대로의 국밥집과 뚝배기 장인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도 이곳에선 여전히 전통을 고집하며 뚝배기를 만들고, 국밥을 끓인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웃과 세대를 이어온 헌신의 기록이자, 정겨운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한국인의 삶 그 자체다.

먼저, 전통 뚝배기 장인 이종환 씨(65세)는 15살 때부터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 탓에 중학교 진학도 할 수 없었지만, 그는 도예가였던 친척의 작업장에서 흙과 도자기를 다루며 배운 기술로 두 동생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전쟁으로 청력을 잃은 아버지와 이들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해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야 했던 그는, 이 삶을 지탱하기 위해 묵묵히 전통 뚝배기 제작에 몰두했다. 세련된 도예 작품으로 이름을 알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과 호흡하는 전통 뚝배기에서 자신의 소명을 찾았다. 뚝배기를 손수 빚고 구워내는 데에만 보름이 걸린다. 흙을 손으로 채로 거르고, 정성을 다해 빚어내고, 유약을 바르는 모든 과정이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뚝배기 제작에 매진하는 날이면 고생하는 가족을 위해 그가 내어 놓는 멸치국수 한 그릇은, 허기를 달래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그에게 멸치국수는 어려웠던 시절 자신을 위로했던 음식으로, 가족의 정과 애정이 담긴 상징이기도 하다. 고단했던 지난 날을 기억하며 가족과 함께 먹는 그 국수 한 그릇은, 그에게 지난 세월의 보람을 일깨워주는 위로가 된다.

이종환 씨처럼 뚝배기에 인생을 담은 또 다른 이가 있다. 도예가 최진선 씨(42세)는 자신이 만든 뚝배기로 손님을 대접하는 기쁨을 가장 큰 행복으로 삼는다. 종갓집 장녀로 자라며, 항상 제사와 손님맞이로 분주했던 어머니를 돕던 기억이 그 시작이었다. 부엌을 떠날 새 없이 요리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진선 씨가 뚝배기를 만들면서 언제나 되새기는 장면이 되었다. 이제는 어머니를 위해 예쁜 뚝배기에 음식을 담아드리며 스스로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녀는 전통 뚝배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다양한 형태의 뚝배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머니와의 추억을 담아낸 그녀의 뚝배기는 단순한 그릇을 넘어 어머니의 노고와 희생에 대한 경의를 담은 결과물이다. 손잡이가 달려 있는 뚝배기부터 오븐 사용이 가능한 뚝배기까지, 어머니의 부엌에서 시작된 그 마음이 지금의 그녀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렇듯 뚝배기와 국밥은 우리의 삶과 추억을 담은 그릇이자, 서로를 위해 한 걸음 다가가고 마음을 전하는 소중한 매개체다. 천안 성환장에서 장터가 열리는 날마다 줄지어 있는 국밥집들도 그 중 하나다. 11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의 국밥 골목은, 60년 전부터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이들이 따뜻한 국밥 한 그릇에 위로받을 수 있는 장소였다. 그 중 두 번째 가게는 김성규 씨와 그의 아내 박정옥 씨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뜻을 이어 운영하고 있다. 돼지 도축장에서 구해 온 부속물로 국밥을 내어 주던 어머니의 고집스러운 손맛은 며느리인 정옥 씨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어머니의 따스함을 기억하며 정옥 씨는 지금도 손님들에게 넘칠 듯한 국밥을 대접한다. 매번 장날이면 성환장의 국밥집을 찾던 사람들은 이제 풍요로워진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의 추억과 맛을 찾아 이곳을 방문한다.